To Whom It May Concern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 본 전시는 특정지을 수 없는 수신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다. 전시의 형식을 빌어놓고는 편지를 쓴다는 의미는 전시라는 형식이 바람직하지 않을 ‘1인 기생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기 위한 장치로서 취하는 태도이다. 서신이라는 형식은 일종의 눈속임이며, 중요한 것은 소개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2022년 12월 17일부터 얼마간 전시의 형식에 기생한다. 그리고 프라이머리 프랙티스는 그 기생의 태도가 의식적으로나마 최소한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제공된 장소, 혹은 지면이다. 그러니 편지의 형식을 빈다는 것은 일정치 않은 대상들, 최대 다수의 불특정 수신자에게 회사를 소개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태도와 형식
기생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취해온 태도이다. 언제나 그랬듯 기생은 한순간 회사를 더 크게 보이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다. 적당한 울타리 아래에 자리를 잡아 숙주에 밀착하여 뿌리내리고, 호스트의 움직임과 행동이 돋보이는 자리에선 회사의 존재감도 함께 상승한다. 마치 미술이 그래왔듯, 당장의 이윤보다는 상징 가치에 적절히 기대어 몸집을 불리는 전략이다. 지식(knowledge)과 승인(recognition)으로 명성을 획득하기 위해 일종의 상징자본을 축적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숙주의 지위를 공유하며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에, 아무 데나 기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생할 조직의 크기나 이미지가 중요하다. 덩치만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거니와, 의미만으로 생계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을 미술의 언어로 달리해보자면, 일종의 전유(appropriation)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민구홍은 회사 차원에서 ‘장영혜 중공업’(장영혜 중공업 귀중, 2020~)에게 비즈니스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서신의 본론-서사-은 화면 4분의 1 크기로 끊임없이 끼어드는 부연으로 인해 목적을 잃은 채 난항을 겪는다. 수다스러운 언어를 뒤로 하고 남는 것은 수신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장영혜 중공업의 트레이드 마크인) 발광하는 화면 위 리드미컬한 텍스트와, 거듭된 부연과 지연의 과정 속에 달성한 ‘충분한’ 회사소개이다. ‘장영혜 중공업’은 예술계에서의 그 지위만큼이나 기생하기 좋은 숙주였을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한국 코카-콜라’(한국 코카-콜라 귀중, 2022~)에 보낸 협찬 서신에서도 이어진다. 사업을 위해 찾은 대상에게 받은 거절의 회신 (혹은 목표를 잃은 서신)은 어쩌면 다행히도 회사의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지위는 전복되고, 다른 의미와 가치를 향해 기호는 변경될 뿐이다.

-질문과 부정의 태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보기 드물게 질문을 자주 한다. 회사는 주변에서 받은 질문, 또는 회사 자신에게 자문한 텍스트와 응답을 그러모아 지면 위에 펼쳐놓는다. (자주 하는 질문, 2022 ver.) 맥락 없는 질문과 살짝 폼을 내듯 센스를 가미한 대답, 때로는 타인의 말을 옮겨와 회사를 언술하는 이 텍스트 더미의 결론은 강박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 귀결한다. 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자기 반영적 성질과 모든 활동은 회사 소개를 핵심에 두고 있다는 그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때로 이 질문은 회사가 아닌 외부로 향하기도 한다. 그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대답하기도 애매한, 목적 없는 질문처럼 보인다. (…까닭은?, 2022) 흥미로운 것은, 생활하며 드문드문 마주치는 일상적인 순간들을 마치 사건처럼 대하는 회사의 물음에 미지의 고객은 응답해야만 할 것처럼 몰입하게 되는데, 종국엔 그런 자신에게 그 까닭을 되레 묻게 되는, 경이로운 선문답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긍정의 제스처로 일상의 표정을 잠식한 SNS가 만들어낸 과잉 긍정의 오늘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거듭된 부정을 추구한다. 회사는 자신을 소개함에 있어서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하지 않는다’로 일관한다. (회사 소개, 2015) ‘나’를 규정함에 있어 ‘하지 않음’만을 천명하는 태도는 그 존재에 궁극적으로는 다가서지 못하게 하며, 회사에 대한 명확한 정의로부터 미끄러지기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스처는 회사를 둘러싼 모종의 규칙과 질서가 단일한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면에서 이런 차이와 지연을 낫는 질문과 부정의 원리는 세상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응당 그렇게 돌아간다 생각하는 일들에 딴지를 걸고, 남들이 신경 안 쓰는 일들에 시선을 맞추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서는 이런 태도는, 현상의 표면 아래서 계속해서 출몰하는 세상의 질서를 마주하게 한다. 마치 차연(차이와 지연 différance)의 유희에 이끌리듯 말이다.

-전시장과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본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활동 영역은 웹이다. 웹사이트 구축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을 아우르며, 디자인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회사 활동은 온라인이 선사하는 광활한 세계 위 무궁무진한 연결의 가능성을 골자로 이루어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로움은 실용과 공상을 오가며, 대체로 웹상에 모종의 사이트를 구축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러한 차원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공간은 디지털 기기의 액정이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규격은 프레임의 변주를 거듭하는 텍스트를 위한 지면이다. 회사는 모바일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격에 맞춰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도입하고, 이미지와 영상, 텍스트를 정해진 목차와 순서로 배열하여 모종의 시간과 깊이를 설계한다. 이는 주된 사용 기기나 온라인 플랫폼의 규격, 형식에 따라 때로는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형태로, 때로는 단계를 지닌 공간으로 구축된다. 하지만, 온라인은 무한한 동시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나 프로그램의 형식에 기반한 물리적 제약을 지닌다. 다행히 링크와 검색을 통한 다음 정보로의 연결은 무한한 루트를 가설하게 하지만, 미리 설계된 구조는 화면 바깥의 세계를 먼저 펼쳐내어 주지는 않음으로, 우리는 빙산의 일각 안에서 일부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미지와 정보는 주어진 규격 아래 재단되고, 노출되는 방식과 조건은 규율된다. 이는 마치 하얀 입방체로 대변하는 전시(장)의 구조와도 닮아있다. 전시장의 기본 조건인 작품이 걸릴 벽과 작품을 비추는 조명 등에서부터 전시를 가시성의 영역에 붙잡아 두려는 욕망이 가시화된 과장된 설치에 이르기까지, 시점은 점점 더 좁혀지고, 시선은 상상보다는 눈앞의 재현된 표피에 머무른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이런 단단한 물리적 구조가 우습기라도 한 듯, 오히려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한 탈주를 상상한다. 와이파이 공유기(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2022)를 통해 볼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아이디‘from anywhere’와 ‘regardless of space’는 공간에 구속되지 않고, 어디에나 존재하려는, 물리적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접속 가능한 공간이다. 사실 전시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고, 연동하며 비선형적 서사를 직조하는 일이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닫힌 공간 너머 열린 문서로써 어디에든 편재할 수 있는 회사임을 표방한다.

-재료와 방법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게 재료는 텍스트이며, 편집은 고유한 창작의 방법론이자 언어적 문법이다. 본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종종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디자이너에서 프로그램 개발자,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사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맞춤형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회사는 그 외에도 다양한 직무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To Whom It May Concern)에서는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이행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전시(공간)를 하나의 책이자 지면, 혹은 웹사이트 삼아 편집을 시도한다. 서신을 통해 모객을 하려니, 환대와 서비스를 고려한 구성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편집의 기술은 필수이다. 지금까지 생산한 다양한 제품 중 이곳에서 활용될 콘텐츠를 선별해야 하며, 모든 형식에는 외형의 심미적 만족감 이전에 기능과 목적의 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텍스트에 대한 감각은 말할 것도 없다. 글자체의 선택과 크기, 지면이나 영상 위에 얹혔을 때의 레이아웃, 그에 따른 가시성과 가독성. 뭐 하나 허투루 다룰 것이 없다. 심지어 이렇게 엄선한 제품을 디스플레이하는 것은 또 다른 편집에 가까운 일이다. 선택한 콘텐츠를 개별의 디바이스나 액자로 옮기고, 그것을 다시 공간 차원에서 늘어놓고 배치를 짜면서 모종의 서사를 상상한다. 일반적으로는 양쪽의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고, 중심선에 맞춰 제품들을 배치함으로 단순하지만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한다. 선형적 나열 뒤 다시 그것을 뒤섞어 논리적 서사를 흩트리고 언어적 해설을 앞서는 감각을 위해 행간을 조율한다. 편집은 일종의 큐레이팅과 같다.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불편함을 유발하는 조정과 조율을 거듭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글자 개별에 집착하지 않고 지면 위 더미로서의 형식이자 영상 속 리듬을 발생하는 이미지에 다가선다. 텍스트는 고객의 수고스러움을 빌미 삼아 상상의 영역–또 다른 질문–에 당도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전시는 ‘너에게 (2022 ver.)’보내는 애정 어린 서신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입구부터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를 반길 태세를 취하고(「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에 흥미를 느낄지 모를 누군가에게, 2022), 여기에 회신하여 기꺼이 방문해준 입맛이 까다로운 고객 – 관객 - 을 극진히 환대하는 차원에서 수상한 과일(입맛이 까다로운 고객을 고려한, 2022ver.)을 문 앞에 준비해 놓았으며, 흥겨운 배경음악(언제 어디서든 DJ가 필요하다면, 2018)까지 틀어두었다. 친절하게 운영시간을 크게 알려주며(운영시간, 2022 ver.), 입장한 손님이 업장 내에서 마음 편히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다 작은 시계(어쩌면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2022 ver.)를 벽 한 편에 걸어두기도 했다. 심지어, 나서는 길 방문해 준 누군가가 관심 어린 미래의 고객이 되어주길 바라며 ‘무작위 서명 생성기가 무작위로 생성한 자신의 서명(2022)’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는 수고를 무릅쓰고 서신에 응답하여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아무것도’와 ‘무엇이든’ 사이에서 무궁무진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

크레디트

참여 작가 : 민구홍 매뉴팩처링
기획 / 글 : 김성우
디자인 : 강주성
공간조성 : 무진동사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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