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눌러 담아 응축된 정서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 공간에 꽤 단단히 기대어선 이미지와 소리의 진동은 눈부시도록 황홀하게(dazzled), 하지만 이내 방향을 잃고 갈피를 못 잡은 채로(muddled) 흩어진다. 시공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감각이나 정서에 주목해 온 김다움은 이번 전시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 개인의 일상에서 충동하는 여러 정서를 그러모은다. 이를테면, 온전히 희석되지 못한 채 개인의 일상에 침전해 있던 우울, 무력, 분노, 환멸이나 좌절에서 희열, 희망, 기쁨에 이르는 양가적인 감정의 잔여물은 작가가 동원한 여러 감각적 편린의 형식으로 전시적 시공 위에 나열되고 중첩된다. 일상이란 언어에 적합하게 따져 묻기 어려운 감정의 조각들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패턴을 이루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좋다가도 싫기를 반복하며 모드가 바뀌듯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기만 할 뿐이다.
예술이 그래왔듯 언어로 다잡으려는 시도는 역시나 실패하기 일쑤이다. 오히려 언어에 정박하기 이전에 그 바깥으로 미끄러지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 그 감각의 영역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날의 감정이 오로지 하나의 이유에서 기인하여 단 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듯 말이다. 그렇게 구심점과 좌표가 사라지고 조각난 일상의 정서적 편린은 개인의 신체에 ‘각인’될 뿐이다. 작가는 일상에 비롯된 여러 불가해한 정서의 파편들을 가사(lyric)의 형식으로 각인한다. 망각에 저항하고, 오늘의 생활 양식 기저에 깔린 원형을 살피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간을 다잡아 복기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해체되고 파편화되어 독해가 불가능한 선형의 이미지로 재구성되어 화면 위에 남겨질 뿐이다. 중간중간 맥락이 불분명한 이미지가 삽입된 채로 말이다. 실패를 되풀이할 것임을 예견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는 하루에 대한 강박적 애착의 감정은 아쉬움과 함께 증폭된다. 그리고 산란하듯 부서지고 조각난 텍스트는 형언할 수 없이 지나간 오늘을 일깨우는 원형(archtype)이자 규칙, 흔적이자 단서로서만 남는다.
<각인> 연작은 미처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소리를 지향하는 텍스트이다. 한편 이 이미지로 침묵하는 소리는 또 다른 이미지를 만나 흔들린다. <눈부신 속삭임, 연주하는 별들>에서 출처를 상실한 이미지의 편집-몽타주는 쇼트의 결합으로 완결된 서사를 향하기보다는 쇼트와 쇼트 사이의 연결이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의 정서 그 자체에 가깝다. 또한 흑백과 컬러, 저해상도와 고해상도, 그래픽과 실제 촬영 영상의 양가적 물성과 점과 선, 그리고 면과 형상이 뒤섞인 영상 이미지의 구성은 서로 양쪽에서 끌어당기며 정서의 진폭을 강화한다. 일종의 변증법처럼 배열된 이미지의 중첩과 연결은 구조로부터 의미를 형성한다. 등장하고 사라지길 반복하며 병렬로 나열되는 이미지는 조화로운 인과관계보다는 수평적으로 등장과 사라짐을 되풀이하기에 서사적이기 어렵다. 오히려 충돌과 대조를 통해 발생할 또 다른 감각으로 초점을 돌리는 듯하다. 체인처럼 연결된 위아래(<각인> 연작과 <눈부신 속삭임, 연주하는 별들>), 또는 (영상을 구성하는) 전후의 이미지는 상호 연결되는 연속성 안에서 의미가 확장하거나 혹은 수렴되며 극적 상황으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다. 그렇게 개개의 쇼트는 하나의 조직(cell)으로서 병렬 등장하는 관계를 통해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의미를 획득하며 하나의 종합적 구조를 성취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미지와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충돌하고 연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공간적 감각은 사운드를 통해 더욱 증폭된다. 작가는 완벽한 하모니를 위해 다가서려다 다시 또 멀어지고, 잔잔하게 흐르다가 급격히 음률과 리듬을 달리하는 사운드를 작곡하여 영상에 덧입힌다. 그리고 여기에 청각적 텍스처를 강화함으로 편안함과 불안함의 양극을 가로지르는 정서적 진동을 설계한다. 사운드는 시각 중심으로 구조화된 (전시) 공간에 특정한 장소적 성격을 부여하기에 적절하다. 눈앞에서 현시하는 이미지의 프레임 너머로 시선을 연장시키거나, 또는 지금, 여기에 충실한 이미지에서 지난 순간이나 도래할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배경이자 전경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에게 모종의 시공을 개설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에 너무나도 깊게 뿌리내린 동시에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탈주하려는 이 시공에는 특별한 잔향(ambience)이 남는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존재하는 ‘괴리’ 그 자체의 공명이라 할 수 있다.
본 전시에서 김다움은 현실을 직시하고, 이상을 꿈꾸지만, 예술을 위해 애써 일상을 사건화하지 않는다. 그저 붙잡히지 않고 흘러가는 모습 그대로, 어제와 내일의 사이에서 매번 그렇게 좌절과 용기가 새로 샘솟는, 반복되는 가운데 잔잔한 파동이 때때로 변화를 끌어내길 바라며 이 상태 그대로를 함께 마주하길 기대할 뿐이다. 그가 만든 무대는 분리된 현실과 이상보다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접면이자 이행 단계(liminal)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이탈하려는, 하지만 이상에 진입하지 못한 채 방향 감각을 상실한 이곳에서 소리와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은 고요함 가운데 떨림으로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일상을 일깨운다. 여기에는 예정된 서사가 없이 그저 끊임없이 일상을 허물고 다시 구축하는, 충동과 절제의 정서가 흐른다. 환희와 절망을 수없이 줄타기하며 여기 서있는 지금의 당신을 향해서 말이다.
크레디트
참여작가 : 김다움
기획/ 글 : 김성우
디자인 : 강주성
공간조성 : 무진동사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