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주는 사회, 문화, 역사, 정치적 맥락 아래에서 개인이 형성하는 관계의 양식, 그리고 집단의 구성원리와 정체성에 주목해 왔다. 그는 국가와 같은 거시적 체계의 이해에서 재현, 포장, 왜곡된 공동체의 허구성을 들추어내며, 그 구성원인 개인 단위에서 시작하는 공동체성의 발현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미디어의 특질을 기반으로 기록과 재현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개인의 관계가 형성하는 유무형의 시공간과 그로부터 발견하는 (비)가시적 서사로 확장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개인의 발화, 그리고 이들이 디디고 선 공간과 장소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삶의 양식을 환대한다. 그리고 이는 종종 미시적 서사와 거시적 기록을 가로지르는 과정에서 공식적 언어 아래에 잠식된 개인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한 무대의 형식으로 가시화된다.
발화.
백현주의 작업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과거 그는 <말이 되는 소리>(2015)에서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특정인의 음성 언어에 주목한다. 전•현직 아나운서를 캐스팅하여 과거와 현재의 뉴스를 서로 바꿔 전달하는 본 작업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이 지닌 대표성, ‘공표’라는 행위의 매개적 성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획득하는 언어의 사회적 무게와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이와 대구를 이루는 다른 작업 <들은 소리 하는 말>(2015)은 TV를 통해 수신한 이야기를 다시 시청자의 음성으로 전환, 발화하는 영상 작업으로, 개인적인 시공간에서의 청취 경험과 일방적 수용자라는 위상은 수용과 전달의 전환 과정에서 대중 매체가 지닌 실질적 파급과 영향력을 불현듯 자각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그는 종종 일상에서 벌어진 특정 사건에 대한 공동체 내부의 의견과 기억을 묻고, 그에 답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개인의 구술을 작업의 서사를 추동하는 핵심에 놓는다. 그렇게 발췌된 사견이나 편집된 기억의 왜곡, 사사로운 사적 담화는 일상을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환기하며, 그간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현상과 공동의 이미지에 균열을 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위해 그의 작업을 공적 공간-공론장-으로 기꺼이 전환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우리들은 요>(2024)에서도 발화된 음성의 역할은 중요하다. 본 작업을 위해 백현주는 베를린 홈볼트 포럼의 녹음기록보관소 (Berliner Phonogramm-Archiv)에 소장된 음성 아카이브를 방문한다. 이곳은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다양한 언어와 음악을 사용하는 종족의 음성을 수집, 보존,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작가는 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녹음한 러시아 이주 한인의 목소리,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공간의 성질에 주목한다. 그는 포로라는 자격으로 타자화된 존재, 국가 장치를 벗어난 벌거벗은 생명, 삶의 터전을 상실해 지리적 경계를 넘어 이주와 이동을 감내해야만 했던 존재들의 음성과, 이들을 대상화하는 공간, 즉 제국주의적 포맷의 필드 리서치라는 목적 아래 설립된 공간의 반향음을 함께 수집, 변주, 편집하여 지금, 이곳에 공명하게 한다. 왁스 실린더 녹음기를 통해 녹음한 목소리 주변의 소음은 잘게 쪼개져 악기와 화음을 위한 소스가 되거나,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낮은 음향으로 <해방둥이>(2024)의 TV 스크린에서 흘러나온다. 또한 실제 목소리는 편집되어 운율을 형성한다. 영상과 함께 공간을 울리는 음악의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비트는 몰입감을 강화하며, 일종의 트랜스 상태와 같은 초월적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사운드스케이프와 같이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초과하며 소리의 레이어를 통한 감각적 공간을 구축한다. 이렇듯 음악의 형식으로 소환된 목소리는 신체적 자유의 박탈과 함께 상실했던 정체성을 해방하는 경로가 된다. 마치 소실된 존재를 회복하고, 다시 현전하게 만드는 시적(poétique) 언어의 기능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은 공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의 표면에 드러나지 못하고 침식되어 온 존재를 위해 기존의 공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분할하고, 경계의 바깥으로 새롭게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라 볼 수 있겠다.
공간과 장소, 그리고 프레임.
한편, 백현주의 작업에서 공간과 장소는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 더 나아가 사회와 관계 맺는 양상을 가시화하는 환경이자, 서사를 내재한 대상이 된다. 그간 작가는 모종의 공동체를 상상하며 특정 지역이나 장소, 공간에 깊게 연루되길 자처해 왔다. 흥신소 직원의 역할로 분하며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개인의 내밀한 사연에 귀 기울이거나(<흥신소> (2011)), 강원도 철원의 마을에 기거하며 자본주의 아래 관광 상품화 되어버린 국가의 이념적 프로젝트를 관찰하는 식으로 말이다(<양지리 디렉토리> (2018)). 여기서 공간과 장소는 공동체의 터전인 동시에 작가에게는 일상의 눈높이에서 그들 삶에 접속하기 위한 본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간은 이방인의 시선을 허물고 경계 너머로 진입하기 위한 장치이며, 장소는 그렇게 마주한 공동체의 내밀한 서사로 생동하는 삶의 양식이다.
작가는 본 전시의 출품작 <우리들은 요>, <해방둥이>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실 속 공간에 주목한다. 양차 대전 시기에 만들어진 연구기관이나 군용 레저센터,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들이 바로 그것이다. 백현주는 이를 이미지로 기록하고 영상의 언어를 빌어 앞서 언급한 목소리와 함께 놓는다. 어떤 면에서 그가 리서치한 공간들은 유령과 같다. 마치 역사에 머무르며 현재에는 안착하지 못해 부유하는 시공간, 또는 상징성은 지녔지만, 삶에 흡수되지 못해 일상의 차원에서 떨어져 나온 이세계(異世界)의 풍경과 같은 면모를 지녔으니 말이다. 또한, 이들은 도래하지 못한 미래의 유토피아를 소환하기 위해 남겨진 현실의 잔재들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시공간의 질서로부터 박리된,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이 폐허의 양식들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가 아닌, 허물어진 과거만이 공회전하는 오늘의 단면을 보여주는 여실한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들은 요>에서 이러한 공간의 이미지는 매체의 공간 속으로 다시 또 격리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영상이 상영되는 매체의 물리적 조건 -TV 프레임-을 다시 영상 안에 출현시킨다. 작업 안에서 갑자기 등장하고 사라지는 손과 프레임의 움직임은 곧 영상의 바깥, 실제 프레임과 연동하며, 시각을 토대로 강화되어 온 근대성의 규율 체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간 이성과 지식 위에 설립된 세계의 질서는 흔들리며, 오늘의 업적을 기리며 선명하게 직립해 있던 현실의 기념비들은 아스러진다. (물리적) 프레임 속 (이미지) 프레임이 출몰하는 영상의 리듬에 따라 스크린의 안과 밖은 서서히 연결되고, 시각 이미지와 호응하는 사운드는 프레임이라는 강박적 결계 안팎으로 탈주를 종용하며 지금 발 딛고선 공간과 장소를 독창적으로 입체화하기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퇴적층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여기로 이동, 돌출한다 (<퇴적>(2024)). 그리고 우리는 그저 과거를 발밑에 둔 채 계속해서 갱신되는 현실 속 이상향을 꿈꾸며 덧없는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해방둥이>). 기억의 부재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시간은 무너진다. 남겨진 폐허의 존재는 공허하고 권태로운 양식일 뿐이다. 백현주는 소실된 역사와 목소리로 생동하는 공간을 설계한다. 이는 다시 일상에 남겨진 장소의 현재적 이미지와 교접한다. 그렇게 작가는 미시와 거시가 교차하고 시제가 뒤섞인 무대를 가설한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로부터 이탈한 모종의 세계가 아니다. 여기는 어쩌면 그 무엇보다 완벽하게 현실을 상연하고 있는 장소이다. 우리는 연장된 과거로서 반복하는 현재를 마주하고 있다.

크레디트
참여작가 : 백현주
기획/ 글 : 김성우
사운드 : 윤재민
공간조성 : 무진동사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시각예술창작산실
촬영 협찬 : 예술지구_p, 공미사, 부기렌탈
오프닝 협찬 : 악양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