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놓이는 첫 번째 붓질은 작가의 상념과 사유 끝자락에서 무언가끼리 서로 만나 부딪히며 생성된 일종의 모호함이며, 이 모호함의 구체적 형상이 바로 추상이다. 형이상학의 범주에서 나의 회화는 일종의 ‘그려낸’ 철학일 수도 있다.” (샌정, 「’획’의 로맨티시즘」에서 발췌, 아트인컬처, 2021)
화가의 세계는 작은 사각의 프레임에서 시작한다. 그 사각의 공간은 무한히 확장하여 영원의 끝자락에 가닿고자 한다. 텅 빈 화면 속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그곳에서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믿음이 언어와 형상으로 온전히 담길 수 없다는 사실은 화가를 좌절하게 만든다. 재현의 재료인 물감은 이 모든 과정을 회화적 사건으로 화면 위에 현시한다. 그리고 남겨진 흔적에서 우리는 작가의 현전을 마주한다. 거기에는 한정된 삶의 차원에서 추출한 결정의 연속, 신체의 움직임과 사고의 궤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물질적 매개로서의 회화에는 언어로 쉽게 환원할 수 없는 다층의 정보가 기입된다. 그렇게 화면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의 감각적 충돌과 조화는 회화의 생성을 뒷받침하며, 화가의 시간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우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절대적 조건, 이를테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고통과 유희의 감각, 한낱 조촐한 개인과 거대한 세계의 관계까지도 살필 수 있다.
샌정은 자신과 비가시적인 관념의 영역 그사이에 캔버스를 놓는다. 작은 사각형의 공간 위에서 세계cosmos를 논하며, 우주적 질서, 덧없는 미ephemeral beauty와 절대적 숭고미the sublime를 탐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추상의 세계에 발을 딛게 한다. 작가는 과거 구상적 참조물을 동원해 미와 숭고, 유한한 인간 존재와 절대적 세계의 긴장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실제로 그만의 관조적 시선에 근간한 수동성과 서정성은 종종 여성이나 자연에서 차용한 도상으로 시각화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형상이 지닌 언어적 결계의 견고함이나 한계로 인해 그는 점차 추상화의 형식을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인간, 동물, 자연 풍경 그리고 건축 양식과 같은 재현적 모티브는 점차 사라졌으며, 근작에 들어서는 기하학적 도형과 절제된 색채가 주로 사용된다. 형이상학적 대상은 참조하는 대상이 구체적일수록 오히려 그 본질에서 멀어진다. 명시적인 언어적 접근은 끊임없는 미끄러짐만을 발생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비어있는 캔버스에 대상을 붙잡아 놓으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아득함에 작업은 더 이상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중성적인 화면으로 귀결된다.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섬세하게 그어진 선과 기하학적 도형들. 구체적인 형상에 의존하지 않는 이 화폭은 사유의 무게와 밀도를 덜어내고 획득한 동적인 에너지와 리듬으로 우주적 구조와 질서를 그려내고 있다.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나 맥락과 결합하여 의미를 형성하기보다는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으로 구성된 작가의 작업은 긴장과 균형의 사이를 섬세하게 줄타기하며 구축된 하나의 ‘세계’에 가깝다. 이는 전통적인 추상회화가 달성하고자 했던 절대성의 영역에 맞닿아 있다. 참조할 대상이 사라진 완전한 추상성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순간에 대한 욕망이며, 자칫 깨어질까 두려운 무결의 상태이다. 한편, 온전히 언어로 포섭할 수 없는 추상, 그 불가해한 원리로 축조된 그의 세계-회화에서 부분적으로 칠이 더해지지 않은 공간을 살펴보자. 이 여백은 물감과 같은 물질적 재료로는 이내 담아낼 길이 없어 형상과 언어적 체계 너머 전체를 향하도록 열어놓은 경로와 같다. 작가는 이를 통해 캔버스 위에 형언할 수 없는 공간감과 대기감을 지닌 ‘무한의 전망infinite vista’을 개설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스민 그리움과 아득함, 노스텔지어와 멜랑콜리아로 대표되는 정서가 그의 회화에 시공을 초월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의 회화에서는 동양 수묵화와 서구 낭만주의가 겹친다. 실제로 작가는 “사물의 본질과 그 정신성을 강조했던 동양화 정신에 가장 이웃하고 있다고 여기는 서양의 미술 사조가 낭만주의”라고 언급한다. 이는 먼저 화면의 구성 방식, 즉 동양화의 습윤성을 떠올리게 하는 표층의 투명한 표현 양식이나, 배경의 단색조, 그리고 낭만주의를 재해석한 알레고리로써 화면을 차지한 기하학적 형상과 색채의 배치 차원에서 그러하다. 이는 색과 형(形)의 교차, 그 어우러짐과 겹침이 만들어낸 층위로부터 상(象)을 살필 수 있는 중간의 지대를 창출한다. 즉, 외부에 회화적 물질을 동원해 고정한 형태는 회화의 내재성 – 평면성, 구성, 색채, 물질성 등 – 을 기반으로 내면의 모습을 비추며 깊이 있는 사색을 이끄는 다층적 화면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작가 고유의 시선, 자연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개입하기보다는 교감과 수용, 내적 성찰의 과정을 선호하는 그의 관조적 태도는 다분히도 동양적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감정이나 개인적 경험,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적 관점과 통한다. 이러한 시선에 기인한 작가의 작업은 인간 존재와 자연 세계의 긴밀한 연결을 도모하며, 개인의 내면세계와 감정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결국, 내적 평화와 성찰을 추구하는 동양적 관조는 서구식 낭만주의가 추구한 감정의 깊이와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과 포개어지며 특유의 화면으로 거듭나고, 인간 존재, 더 나아가 우주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구한다.
본 전시에는 2000년대 중후반을 시작으로 최근에 이르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샌정은 그간 한결같은 태도로 회화의 내재성과 특이성에 기대어 현상의 내부와 너머에 존재하는 근본적이고 내적인 원리를 질문해 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당대적으로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는 ‘충격’ 속에서 한 발짝 떨어지고, 시대의 사상적 배경이나 서사적 요구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이 추상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가장 오래된 미술 매체로서 미적 욕구의 충족과 그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할 것이다. 다가설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가닿고자 캔버스를 마주하는 화가 샌정의 모습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사유의 영역, 어쩌면 감당하기 버거운formidable 초월적 세계 앞에선 작가의 태도를 환기한다. 거기에는 개인의 감정과 자유, 창조성과 상상력의 영역에서 세상을 감지하고, 보다 직관적이고 주도적으로 직면하며, 철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낭만주의적 드라마가 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 찰나와 영원에 대한 본원적 탐구는 돌고 돌아 회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회귀한다. 이는 세계를 회화적 방법론으로 이해하려는 작가 자신에게 남겨진 사명이자 과업이다. 그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기원을 찾아 헤매는 행위이기에 영원히 지속될 미완의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화가로서 끊임없이 회화에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는 회화를 생각하게 하고, 회화는 숙명처럼 그 세계를 열어젖힌다” 는 믿음은 그가 화가로서 캔버스를 마주하는 자세이며, 또한 빈 공간 안에 획을 긋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크레디트
참여작가 : 샌정
기획/ 글 : 김성우
디자인 : 여다함
공간조성 : 무진동사
사진 : CJY ART STUDIO (조준용)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시각예술창작산실